(2002년작)

 

마을 어귀 돌우물은 물이 끊긴지 어느덧 십여 년이 훌쩍 지나 그 흔적만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덕분에 아무리 무더운 날씨라도 손이 시릴 정도의 찬물이 콸콸 솟았다던 이야기는 이제 몇몇 촌로를 통해서나 가끔씩 얻어들을 수 있었다.
쇠락한 우물가의 돌무더기 사이로 지팡이를 짚어가며 석정촌(石井村)에 들어서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디선가 땅땅거리며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서너 채의 허름한 집을 지나칠 즈음 일정하게 울리던 쇠망치 소리가 한 번은 길고 한 번은 짧게 변하며 점차 급해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그의 지팡이도 빠르게 움직였다. 벽 안쪽으로 화덕이 한껏 달아오른 어느 대장간 앞에 다다르자 그 소리는 거짓말같이 딱 그쳤다. 노추(老鰍)는 문지방을 넘어서며 손을 번쩍 쳐들었다.

“여! 오랜만이구만. 그동안 별일 없었는가? 헤헷!”

웃통을 드러낸 채로 달구어진 쇳덩이를 살피던 왕씨는 그를 힐끔 쳐다보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안으로 들어선 노추는 어깨에 엇비스듬히 둘러맨 보자기를 끌러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건넸다.

“이 지겨운 촌구석에 여전한 거라고는 따가운 모래 바람이랑 네놈의 쇳소리뿐이라니까! 헤헷! 그나저나 이 어르신이 이렇게 납신 것도 오랜만인데 이따가 해 떨어지면 오가원(吳家園)에서 또 쫄깃쫄깃한 손맛 좀 봐야지? 헤헤헷!”

대장장이 왕씨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우악스러운 팔뚝으로 다시 망치질에 열중했다. 잠시 후 길쭉하게 늘어난 쇠를 손에 든 집게로 이리저리 돌려보고서야 걸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쇠신발이 다 닳도록 헤맬 땐 안보이다가 정작 나중엔 절로 찾아진다더니(踏破鐵靴無覓處 得來全不費工夫), 네 녀석이 딱 그 짝이구나. 노름판에서 통 안보이기에 내 돈을 등쳐먹고 아주 뜬 줄 알았더만, 그동안 어디 숨어서 간덩이에 기름칠이라도 하고 나타난 게냐?”

실실거리던 노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잔뜩 일그러졌다.

“뭐야? 등쳐먹어? 이런 똥물에 빠져 뒈질 놈을 봤나! 그럼 내가 언제 패를 들고 장난질이라도 쳤단 말이냐? 안 그래도 몇 달 동안 죽을 고생을 하다 겨우 돌아온 사람한테 고작 한다는 소리가 뭐? 어쩌고 어째?”

왕씨는 콧방귀를 끼며 노추를 슬쩍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망치를 힘차게 내려치며 말했다.

“손에 그 지팡이는 또 뭐냐? 몇 달 고생했다는 것이 설마 계집 치마폭에서 용을 쓰느라 고생했다는 말은 아니겠지? 얼마나 죽자 사자 덤볐기에 그렇게 막대기 신세까지 질 정도로 몸을 상했누?”

“흥! 도적놈처럼 흉악망측하게 생긴 네놈은 계집들이 알아서 피해 다닐 터이니 군자의 풍모를 지닌 이 형님이 배 아프기도 할 것이다. 하기야 주야장천(晝夜長川) 풀무질만 해대는 놈이 세상의 그런 오묘한 이치를 알 리가 없지. 자고로 영웅은 호색(好色)이라 했으니 이 어르신께서 계집질을 하던 용두질을 치던 그게 다 천리(天理)이고 순리(順理)인 셈인 게야. 그러니 네놈은 이 영웅 나으리를 그만 시샘하고 이리 와서 요 물건이나 한 번 보거라.”

곧게 만져진 쇠를 기둥에 감고 막 모양을 잡으려던 왕씨가 제법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네가 세상이 알아주는 영웅호걸이든 계집 구멍만 보면 눈알 뒤집고 달려드는 오입쟁이이든 나야 알 바가 아니지. 허나 네 녀석이 군자라는 것은 나도 인정하고말고! 글만 읽는 책상물림도 군자라지만 남의 집 대들보를 타는 군자(梁上君子)도 군자는 맞는 셈이니…….”

그런데 왕씨가 갑자기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는 대장간 안쪽의 어두컴컴한 구석을 슬쩍 한 번 쳐다보고는 옆에 벗어놓은 옷가지를 들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천천히 닦아냈다. 이를 지켜보던 노추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장장이 왕씨는 이 근방에서 힘이 세기로 소문난 장사인데다 칼까지 쓸 줄 알아 어지간한 강호인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자였다. 그런 사람이 잔뜩 주눅이 들어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무언가 이상했던 것이다.
노추는 고개를 돌려 왕씨의 눈길이 닿았던 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낯선 사내 하나가 낡은 모루 위에 엉덩이를 대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길게 늘어진 문 그림자 때문에 그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가 없었고, 대신 허리춤에 매달린 주먹만 한 크기의 누런 가죽주머니가 노추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초승달 모양으로 구붓하게 이지러진 칼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노추는 그 사내가 어둠속에서 자신을 훑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도 질세라 모루 위의 사내를 향해 눈을 한껏 부릅떴다.

<차림새로 보아서는 필시 강호의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구석이 있어보이지도 않는 녀석인데, 왕가 놈은 어째서 저런 녀석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람? 하기야 만월도(彎月刀)를 꽂고 있는 품이 어찌 보면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젠장 할! 아무튼 왠지 더러운 기분이 드는 놈이야. 그래도 저 손잡이에 박힌 푸른 보석은 태가 그럴듯하고 빛깔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게 값이 상당하겠는걸? 나중에라도 저 자식이 낯선 뜨내기인지 알아보고 어떻게 수작이나 한 번 걸어봐야겠군.>

노추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왕씨는 불에 달구어진 쇠테를 옆에 있던 나무바퀴에 대고 천천히 두르기 시작했다. 쇠테가 나무에 닿자마자 화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이 일어났다. 왕씨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집게로 쇠테를 힘껏 잡아당기는 짓을 한참이나 되풀이했다. 어느덧 쇠테가 다 둘러지자 활활 타고 있는 바퀴를 곧장 물통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쇠테가 바짝 오그라들며 바퀴에 단단하게 달라붙었다.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허연 수증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왕씨가 말을 건넸다.

“네놈이 봐달라는 게 어떤 물건이냐?”

싯누런 이를 앙다문 채로 왕씨가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추는 고개를 돌려 안쪽의 사내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재차 눈을 부라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높여 소리치듯 말했다.

“내가 일전에 운이 닿아 손에 넣은 칼이 하나 있는데, 그 칼날이 마치 늑대 아가리에 이빨이라도 박혀있는 것처럼 심히 요상하게 생겼거든. 헌데 애석하게도 중간쯤에 이 하나가 똑 부러지고 없는 것이, 젠장 할! 볼 때마다 영 눈에 거슬리지 뭐야. 꼭 뒷간에서 일보고 그냥 나온 것처럼 찜찜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구. 해서 아쉬운 대로 여기서 손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이렇게 몸소 행차를 하신 게다.”

말을 마친 노추는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다시 한 번 낯선 사내를 째려보고는 절룩거리며 탁자 건너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꾀죄죄한 천에 둘둘 말려있는 낭아도를 여봐란 듯이 번쩍 들었다가 탁자 위에 힘껏 내려놓았다.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노추의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했다. 생각보다 육중한 낭아도가 미처 빼내지 못한 그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그대로 찧어버린 것이었다. 

“으으음…….”

노추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뒷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시린 통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망신을 당한다는 생각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애써 아픔을 참으며 낭아도를 감고 있는 천을 급히 풀어헤쳤다. 손톱이라도 뭉개진 건지 손가락에서는 금세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턱이 벌벌 떨릴 정도로 손가락이 아려왔지만 그렇다고 뒤늦게 아픈 내색을 하는 것도 우스운 지라 낭아도에서 벗겨낸 천을 서둘러 오른손에 둘둘 말았다. 그리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는 척하며 대장장이 왕씨와 낯선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왕씨는 낭아도가 붉은 빛을 뿌리며 모습을 드러내자 연신 탄성을 내지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또 지금껏 꼼짝하지 않던 어둠속의 사내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탁자 위의 낭아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노추는 다른 사람들이 낭아도에 커다란 관심을 내보이자 덩달아 자기 자신이 대단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 들어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으헤헤헷!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놀라기는 뭘 그리 놀라는 게야. 내게는 이 녀석보다 더한 놈도 있는데 그때는 어찌하려고 벌써부터 이렇게 호들갑이람! 어찌되었든 이 형님이 워낙 다망(多忙)하시니 네놈은 그저 부러진 이를 살리는데 얼마나 걸리는지만 말해달라구. 으헤헤헷!”

그러나 노추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 듯 왕씨는 탁자 위의 낭아도를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며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저 멀리 곤륜(昆崙)의 깊은 곳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혈령철(血靈鐵)인가 보구나.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인데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정말 대단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더니, 이 빛깔이며 이 소리까지 정말이지 어지간한 쇳덩이하고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군.”

왕씨는 아쉬운 표정으로 칼을 조심스레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노추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안타깝게도 혈령철은 이런 촌구석에서는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가 없는 귀한 쇠붙이야. 웬만한 불 앞에서는 물러지지가 않기 때문에 특별한 비법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게다가 이 칼을 만든 사람은 내가 평생 담금질을 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솜씨를 지닌 자가 만든 것이다. 칼의 선만 봐도 한눈에 딱 알 수가 있거든. 자고로 명공(名工)이 만든 이런 물건들은 나 같은 범인(凡人)이 손을 대면 손을 대는 만큼 값어치가 떨어지고 말아. 네놈이 이처럼 귀한 칼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지만 괜히 어설프게 건드려 흉물스럽게 만들지 말고 그냥 간수나 잘하고 있거라.“

왕씨의 말에 노추는 꼴깍하고 침을 삼키며 생각에 잠겼다. 이때 구석에 있던 사내가 바지를 탁탁 털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가래가 끓는 탁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이 칼은 내게 넘겨라!”

노추는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허리춤의 만월도를 덜렁거리며 다가온 사내는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 관자놀이에 붙은 팥알만 한 사마귀를 어루만지며

“아무리 뛰어난 말이라도 그 값어치를 알아주는 백락(伯樂)이 세상에 없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땅을 디디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백락 같은 이를 찾기란 결코 쉽지가 않지. 설혹 그런 자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 값어치를 치를 수 있는 자는 더더욱 드물 것이다. 마치 이 대장장이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하찮은 네놈이 강호에서 이 낭아도를 직접 쓸 일도 없을 터, 값은 후하게 쳐줄 것이니 너는 이 낭아도를 내게 넘겨라.”

그 사내는 품 안에서 조그마한 금덩이를 꺼내 낭아도 옆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지닌 것은 이것이 전부이니 내가 머무는 곳으로 나중에 찾아오너라. 여기에 금 열 냥을 더 얹어줄 것이다.”

노추는 이 사내가 작고 쭉 찢어진 눈에 아래턱이 세모꼴로 모아진 품이 꼭 뱀 같다는 생각을 하며 탁자 위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어림잡아도 족히 몇 냥은 됨직한 금덩이가 누런빛을 내며 놓여있었다. 그는 손가락이 화끈화끈 쑤시는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열 냥이나 되는 금덩어리를 여기에 더 얹어준다는 것을 보면, 이 낭아도가 값비싼 칼이라는 게 확실하구만. 처음 보는 놈이 선뜻 이런 큰돈을 내놓는 것도 그렇고 저 오만한 왕가 녀석이 방금 말해준 것도 그렇고…….
그럼 이왕 말 나온 김에 저 기분 나쁜 놈에게 확 팔아버려? 아니지, 아니야. 이 칼을 만든 쇠가 그렇게 귀하다니 어쩌면 금 열 냥은 이 쇳덩어리 값에도 못 미칠지 몰라. 게다가 이 칼은 이 근방에서 제일 솜씨 좋은 왕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난 대장장이가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필시 저 음흉한 놈이 다른 사람들 입김이 닿기도 전에 먼저 값을 후려쳐 얼렁뚱땅 가로채려는 속셈이 틀림없어.
젠장 할! 안 그래도 둥그런 칼 하나 차고 위세 떠는 꼬락서니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니까! 밥그릇 수도 한참은 적어보이는 놈이 말하는 본새까지 꼭 아랫놈 대하듯 하는 게 영 버르장머리도 없고 말이야. 흥! 이제 이 어르신께서 이 낭아도의 진가를 알게 된 이상 그리 쉽사리 이 칼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노추는 탁자 위의 금덩이를 쳐다보며 마른침을 꿀꺽 한 번 삼키고는 짐짓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쪽 말은 고맙지만 나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수. 사실 이 낭아도는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가보(家寶)인지라 결코 쉽게 팔 수 있는 물건도 아니외다. 아! 물론 전에 누군가가 금 스, 스무 냥을 내놓는다고 해서 잠시 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 그때는 집안이 어려웠던 때라 그랬던 것이고 만약 지금 팔게 된다면 적어도 금 서른 냥은 받아야…….”

노추가 말끝을 흐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사내가 피식거리며 실소를 터뜨렸다.

“방금 이 칼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라고 했느냐? 그럼 네놈은 이 낭아도의 내력 또한 잘 알고 있겠구나. 이 낭아도는 원래 열여덟 개의 늑대 이빨을 가지고 있어 아홉에 아홉은 열여덟, 구구낭아도(九九狼牙刀)라 불리운다. 또 귀하디귀한 혈령철로 만들어져서 언제나 붉은 빛을 품고 있으며, 더불어 피를 보면 볼수록 그 붉은 빛이 더해져 혈랑도(血狼刀)라는 이름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지?
그리고 사막에서는 두려울 게 없다는 백사방(白沙幫) 방주 사낭왕(沙狼王)! 그 사낭왕 여태종(呂太終)이 바로 이 구구낭아도의 주인이었다는 것과 십여 년 전에 갑작스레 모습을 감췄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을 테고?”

말을 잇던 사내의 눈초리가 순간 매섭게 변하며 노추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길을 받은 노추는 왠지 오금이 저려오며 겁이 덜컥 났지만, 그렇다고 앙숙처럼 지내는 친구 앞에서 꼬리 내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는 사내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일부러 코웃음을 쳤다. 이를 본 사내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내뱉듯이 말했다.

“못생긴 두꺼비가 백조 고기를 먹으려고 한다더니(癩蛤虫+莫想吃天鵝肉) 네놈이 정작 제 분수를 모르고 무리한 욕심을 내는구나. 이 구구낭아도는 팔십여 년 전 강서(江西)의 진가(晋家)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금에 중원 땅에서 이 칼을 제대로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진가의 후손인 신장옹(神匠翁) 진양(晋陽)을 포함하더라도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들은 너 같은 하찮은 놈이 칼을 맡기고 싶다 해서 마음대로 맡길 수 있는 그런 자들도 아니지. 행여 그들이 네 부탁을 들어준다고 해도 네놈은 중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 구구낭아도로 인해 모가지가 땅바닥을 구르고 있을 것이다.
이 보도(寶刀)의 값어치를 매기자면 사실 금 백 냥도 훌쩍 넘는다고 할 수가 있지. 게다가 사낭왕의 명성까지 더해졌으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나가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보물은 지킬 능력이 없는 놈에게는 되려 커다란 화근덩어리일 뿐이다. 그나마 내가 네놈한테 열 냥이 넘는 값을 치르려는 것은 이곳까지 와서 시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서다.“

노추는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사마귀 사내의 말을 듣다보니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그는 대장장이 왕씨를 힐끔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감히 누가 누구한테 딱하다는 거야? 얼핏 보아도 기껏 마흔 줄에나 접어들었을 놈이 꼬박꼬박 제 집 종놈 대하듯 건방지게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고 말이야. 상판대기도 꼭 말라비틀어진 뱀 대가리마냥 생겨가지고, 젠장 할 놈!  제깟 놈이 칼밥을 얼마나 처먹었는지 모르지만 이 어르신도 칼부림이 다반사인 야바위판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시다. 감히 누구한테 공갈을 치려는 게야. 여차하면 까짓 거 한 번 부딪히면 될 것 아냐. 게다가 이 근방에서 가장 힘세고 싸움질도 능한 왕가가 옆에 버티고 있으니 설마 모른 척 하지는 않을 테고…….
그래! 여기서 절대로 밀리지 않아야한다. 못해도 금 백 냥이 나가는 물건을 겨우 열댓 냥에 날로 삼키려 들어? 천하에 순 날도둑놈 같으니라고! 감히 어디서 손도 안대고 코를 풀려는 게야.>

노추도 짐짓 성난 목소리로 눈앞의 사내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아니, 보자보자 하니 정말 너무하는구만. 도대체 누가 못난 두꺼비고 누가 잘난 백조란 말이오? 젠장 할! 보아하니 당신도 강호에서 칼날에 기대 먹고사는 사람 같은데 이 사람도 따지고 보면 강호의 한 식구나 매한가지란 말이외다. 이 바닥이 아무리 사람목숨을 길가의 개뼈다귀만도 못하게 여긴다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하는 법 아니오? 그런데 협(俠)이라는 글자는 어디다 내팽개치고 고하(高下)도 없이 이렇게 사람을 등쳐먹으려는 게요?
물건값이 금 열 냥이면 금 열 냥을 치르고 금 백 냥이면 금 백 냥을 치르면 될 것을, 누구는 잘나서 백 냥이고 누구는 못나서 열 냥이라니 세상 천지에 그런 셈이 어디 있단 말이오? 젠장 할!”

목에 핏대를 세운 채로 급하게 말을 내쏟은 노추는 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칼은 내 것이고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가 맞소. 세상에 이런 칼이 어찌 당신이 아는 그 구구낭아도 하나뿐이겠소? 아무리 혈령철이 귀하다고 하나 세상에 어찌 딱 요만큼 만의 혈령철이 있을 것이며, 아무리 이런 칼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나 그 잘났다는 대장장이들이 어찌 딱 이 칼 하나만을 만들었겠소?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칼은 내 것이고 우리 집에서 대대로 전해지던 가보가 맞소!”

흥분한 노추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요란스레 다그치자 옆에 있던 왕씨는 불안한 기색으로 사내의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추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지만 이미 할 말을 다한 노추는 왕씨의 팔을 툭 쳐내며 탁자 위의 낭아도를 냉큼 집어 들었다. 사마귀 사내는 묵묵히 노추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문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금 백 냥을 주면 그 칼을 내게 넘기겠는가?”

“시, 싫소. 나는 이 칼을 지닐 자격도 없는 하찮은 놈인데 하물며 어찌 남에게 이런 귀한 칼을 함부로 팔 수 있겠소? 그러니 당신은 나 같은 촌무지렁이가 가진 물건은 그냥 모른 척하고 어서 가서 당신 볼 일이나 보시오.”

이 말을 들은 사내는 순간적으로 눈썹을 꿈틀거리며 허리춤의 만월도로 손을 가져갔다. 이에 질세라 노추도 낭아도를 쥔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왕씨의 대장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만월도를 찬 사내는 관자놀이의 검은 사마귀를 실룩거리며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재미있군, 재미있어. 천하의 구구낭아도가 두 개였을 줄이야. 아무튼 그대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장모(張某)가 큰 실수를 했군. 큰 실수를 했어. 아하하핫”

사마귀 사내는 탁자 위의 금덩이를 품 안에 도로 집어넣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대장장이 왕씨에게 말했다.

“내 급히 할 일이 생겨 이만 자리를 떠야겠다. 오늘 네게 맡긴 물건은 며칠 내로 사람을 보낼 테니 그 편에 부치도록 해라. 앞으로도 당분간 본 회(會)의 일거리는 이리 가져올 것이니 기일에 늦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노추를 쳐다보고는 비릿한 표정으로

“깨진 손가락이나 잘 간수하는 것이 좋을 게다. 덧나면 여러 달 고생을 하게 될 터이니……. 아니지,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군. 하하핫!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피 냄새로다. 아하하핫!”

사내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대장간을 떠났다. 이윽고 그가 사라지자 대장장이 왕씨는 노추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이 미친놈아! 넌 모가지가 열 개쯤 되기라도 한다더냐? 방금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신로명회(臣鹵皿會)사람이라고, 신로명회! 그것도 그냥 신로명회 사람이 아니라 거기서도 아주 높은 사람이란 말이다. 그렇게 눈치를 주는데도 모르다니! 필시 멍청한 네놈의 간덩이가 잔뜩 부은 게야. 손에 든 그 구구낭아도가 비록 천하의 귀물(貴物)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네 목숨과 맞바꿀 생각은 아니겠지?”

“젠장 할, 이 칼은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가 맞는다니까! 그러니 구구낭아도인지 팔팔낭아도인지 하는 칼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라고, 아무 상관도 없다고!”

“네놈이 정말 미친 게로구나. 귀엽다고 갓난애를 안아주면 바지에 똥을 싼다더니(好心沒好報) 이놈이 딱 그 짝일세. 내가 나흘 전에 삼탑(三塔)거리 노름판에서 아까 그 사람을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야차(夜叉) 같은 파씨(芭氏)형제들이 그자를 보고 어찌한 줄 아느냐? 마주치자마자 즉시 개처럼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면서 절을 하더라고, 절을!
그래서 대체 그자가 누구이기에 저런 개망나니들이 그러는가 싶어 물어봤더니 이름이 장양필(張良匹)이라는 자인데 그 무공이 높아서 중원에서도 아주 유명하다는 게야. 특히 뱀독을 먹인 소금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거기에 당한 사람은 자기 눈알을 후벼 팔 정도로 고생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름 대신 사독염(蛇毒鹽)이라고 부른다지 아마. 그리고 여기에 온 것도 어느 높으신 관리를 끔찍하게 죽이고 잠시 몸을 피하려는 거라더군.“

왕씨의 말을 듣고 있던 노추는 가슴 한 구석이 금세 서늘해졌다. 그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왕씨에게 말했다.

“젠장 할! 신로명(臣鹵皿)이라는 이름이 소금(鹽)의 파자(破字)라는 것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허나 결국은 염적(鹽賊)들의 무리일 뿐이잖아? 그런 도적놈들 우두머리가 죄까지 짓고 도망왔다면 당장 관부(官府)에 고해바치면 될 것 아냐. 나라의 관리를 해쳤다면 분명 커다란 상금도 걸려있을 테니…….”

왕씨는 노추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치며 말했다.

“이런 멍청한 놈, 정말 네가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신로명회 눈 밖에 나면 높으신 관리들도 그날로 황토에 묻히고 만다는데 고발은 무슨 망할 놈의 고발이야!”

“그, 그래도 나한테 그런 공갈은 안 통한다구. 흥, 감히 누구 것을 공으로 먹으려고. 안 그래도 꼭 뱀 같은 놈이 이름까지도 양필이니, 정말 제 이름처럼 뱀이랑 아주 좋은 짝인 셈이구만. 쳇!”

노추는 낭아도를 쥐고 있는 손에 다시금 힘을 꽉 주었다. 왕씨는 그런 노추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고로 시무를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識時務者爲俊傑)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장양필이라는 사람을 뒤쫓아가 낭아도를 갖다 바치는 것이 네놈한테 이로울 게다. 그나마 금 열 냥도 건지고 네 목숨도 부지하려면 그 수 밖에는 없다구! 그리고 그 손은 또 어떻게 된 거야? 이런, 온통 피투성이 아닌가! 어서 손이나 내밀어 봐! 그러다 덧나면 고생깨나 하겠는 걸.”

하지만 노추는 왕씨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표정으로 대장간을 나섰다. 그런 그의 품안에는 피 묻은 천으로 대충 감싼 낭아도가 꼭 안겨있었다.

 

 

 

... 老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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