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흡원기보(吸元氣寶)

 

 

높이는 아홉 자()에서 열 자 정도, 둘레는 사십 자가 넘어 보인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그물처럼 엮어 만든 둥근 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네모난 문이 달려있고 받침목 위로 우산처럼 짜인 지붕 위에는 한 겹의 두꺼운 자작나무 껍질이 입혀 있었는데 흰 천을 그 위에 덮은 후 털실로 바깥쪽을 단단히 동여매 놓았다.

 

천막 한가운데에는 두 치가 채 못 되는 조그만 흙벽돌을 쌓아놓았는데 그 위에 걸려있는 큼직한 가마솥에는 물이 끓고 있고 초췌한 안색의 한 사내가 불길을 쳐다보며 말린 말똥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 주위로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대여섯 명의 사내들은 모두가 옷차림이 각양각색이었는데 그 누구도 불을 피우고 있는 남자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눈치였다.

 

북쪽에 앉아있는 두 사내는 머리 윗부분을 네모지게 체개(剃開)하여 양쪽 관자놀이까지 깎아 내렸는데 머리 뒤쪽도 똑같이 두와(頭窩)까지 깎고 앞머리에 한 다발의 털만 남겨 놓은 것을 보니 영락없이 몽고족(蒙古族)들이 하는 겁구아(怯仇兒)라는 변발(辨髮)이다. 둘 중에 커다란 귀걸이(耳環)를 차고 있는 오른쪽의 사내가 유창한 한어(漢語)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말 미치겠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삭막한 곳에서 지내야 하지? 황형(黃兄)! 무슨 말 좀 해보시오! 황형은 그래도 현수법사(玄手法師)랑 제일 가깝지 않소?”


그러나 한동안 아무런 대꾸가 없자 은연중에 실내에 있던 자들의 눈길이 반대편 두꺼운 털옷을 입은 사내에게로 쏠렸다. 그 사내는 불꽃이 허공으로 떠오르다가 사라지는 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전히 아무 말도 못 들은 듯 대답이 없었다. 이번엔 털옷 사내의 바로 옆에 있는 자가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황형! 우리는 그래도 황형을 믿고 처자식들도 다 팽개친 채 몽고 달자(韃子)들을 따라 이 황량한 곳까지 왔는데 이게 뭐란 말이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생활을 견딜 수가 없단 말이외다.”


얼굴 한쪽이 얽은 그 사내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편에 놓여있던 조그만 통을 향해 퉤 하고 신경질적으로 가래침을 뱉어냈다. 그러나 황()이라는 성을 가진 사내는 별다른 동요 없이 말젖으로 만든 마유주(馬乳酒)를 한 잔 주욱 들이키고는 양고기 한 점을 집어 천천히 입안에 넣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우물거리던 그가 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자신의 털옷에 대고 문지르며 천천히 대답했다.


"자네들은 나를 따라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여보게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 남들이 들으면 마치 내가 당신들을 억지로 이곳에 끌고 온 줄 알겠군. 솔직히 말해 우리들 모두가 북적(北狄)놈들한테 금덩이를 받아먹으며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 것이 꺼려 이곳으로 몸을 피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 황모(黃某)가 어쨌다고?"


거무튀튀한 얼굴의 황씨 사내는 말을 마치고 싸늘한 눈길로 천천히 주위를 쓸어보았다. 한동안 의기양양하게 다그치던 자들은 모두 황씨의 눈을 피해 짐짓 딴전을 부렸다. 황씨는 점점 사그라지는 불길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흐흐, 이곳이 싫다면 모두들 떠나버리시지. 아무도 말릴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현수법사와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해 두지. 그 능구렁이 같은 작자가 나랑 가깝다고? ! 정말 웃기는군. 그 대머리 중은 무공이 기묘막측(奇妙莫測)하고 심기 또한 측량할 수 없는데다 자기 제자 말고는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 화상(和尙)이 뭔가 꿍꿍이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 바로 그것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고."


천막 안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오직 마른 말똥이 타는 소리만 타닥타닥하고 들릴 뿐 불가에 둘러앉은 이들은 모두가 말없이 타오르는 불꽃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때, 옆에서 불길을 조절하고 있던 사내가 천막의 한쪽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까부터 데워놓은 다기(茶器)를 열어 찻잎(茶葉)을 조심스레 넣고는 가마솥으로 다가가 끓는 물을 붓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씨 사내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보게, 임 다유사(林 茶由師). 내게도 한 잔만 따라 주구려. 이놈의 마유주는 시큼털털한게 꼭 말오줌 같아서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만 버린단 말씀이야."


임 다유사라 불린 사내는 황씨 사내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우려낸 찻물을 문밖에 내다버리고는 가마솥으로 다가와 다시 끓는 물을 부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일렁이는 불길에 비춰 환히 드러났는데 어림잡아도 서른은 한참 넘어 보이는 자였다. 그는 사천(四川) 성도(成都)태생의 임전방(林傳芳)이라는 자로 원래 서촉 사천감(西蜀 四川監)의 각다장사사(榷茶場使司)에서 임시로 일하다 때마침 그 곳을 찾은 참지정사(參知政事) 양회(楊會)의 눈에 띄어 대도(大都:北京)로 올라오게 된 자였다. 다예(茶藝)에 능할 뿐만 아니라 성실하고 과묵하여 윗사람들까지도 그를 깊이 신임했기 때문에 비험다유국(批驗茶由局) 고문(顧問)으로 임명되어 원이 막북(漠北)으로 쫓겨온 오늘까지도 여기서 차를 달이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임전방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내미는 찻잔을 받아든 황씨 사내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쥐며 한 모금을 마시고는


"흐음, 예부터 산상강중정하(山上江中井下)라지만 역시 임 다유사의 손만 거치면 우물물에 사등품 찻잎도 은선수아(銀線水芽)가 되고 마는구려. ! 정말 좋군, 좋아."


딱딱하게 굳어 있던 주위 사람들도 황씨 사내의 이야기에 동조를 하는지 고개들을 끄덕였다. 이 때, 등에 두 자루의 청강검을 엇갈려 맨 채 서쪽에 묵묵히 앉아있던 사내가 억센 광동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황형! 그럼 황형말대로 현수법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면 어떡할 거요? 그와 싸워 빼앗을 거요? 비록 황형은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을 모두 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결코 법사의 상대는 되지 못할텐데...."


"흐흐, 이보게, 쌍수검(雙手劍) 탁광양(卓廣洋)! 이 붕산권(崩山拳) 황정웅(黃鼎熊), 두 주먹만으로 운남(雲南)의 서산(西山)땅에서 조그마한 명성을 얻긴 했었지만 어찌 천하를 위진(威震)시키는 동서쌍불(東西雙佛)의 사형(師兄)을 누를 수 있단 말인가? 비록 현수법사가 라마교에서 쫓겨났다고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쌍불쌍검 못지 않은 고수이지. 하물며 내가 언감생심(焉敢生心) ()으로 그와 맞설 듯 싶은가?"


"그렇다면....?"


"강자일수록 정()에 약한 법이지. 흐흐, 현수법사의 그 멍청한 제자 놈은 두었다 어디 쓰겠나?"


"아하!"


천막 안의 사람들은 황정웅의 이야기를 듣더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단하오! 누가 황형의 산만한 덩치를 보고 그런 무저(無底)의 지혜가 숨겨져 있으리라 짐작하겠소?"


등에 쌍검을 맨 탁씨가 감탄했다는 듯 말하자 사람들에게서 오랜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황정웅은 오히려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쉬잇! ‘어쨌든을 입에 달고 사는 그 대머리 화상은 무공이 고강하여 설령 우리를 엿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알아챌 수가 없을 것이네. 그러니 모두들 매사에 주의를 해야한다구. 게다가 내가 이 북원(北元)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지."


"아니, 그게 무엇이오?"


"바로 단원맹(斷元盟)때문이네!"


"단원맹?"


"흐흐흐. 어느 미친놈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이 삭막한 막북(漠北)에서 뼈를 썩히고 싶겠는가? 부끄러운 이야기네만 실은 오일 전, 은밀히 산서(山西)의 태원(太原)에 있는 옛 친구에게 기대어볼 요량으로 혼자 길을 나섰었지. 헌데 산서성을 막 접어드는 고갯길에 웬 시체 하나가 엎어져 있지 뭔가. 부패된 걸로 봐서는 죽은 지 이삼 일은 족히 된 듯 싶더군.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의 손에 쥐어진 낭아도(狼牙刀)가 몹시 낯익어 시체를 뒤집보았지. 비록 그 시체는 몸뚱이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반 이상이나 난도질이 되어있었지만 난 그자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네. 난 그자와 안면이 몇 번 있었거든."


붕산권 황정웅은 주위에 앉은 자들이 모두 자신의 입만 쳐다보며 목을 길게 빼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무척이나 흡족해하며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변발(辮髮)의 사내가 조바심이 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 시체가 도대체 누구였단 말이오?"


"등암(燈巖)!"


"등암? 아니 강북삼절(江北三絶)인 산서신도(山西神刀) 등암 말이오?"


황정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등암은 강북(江北)지방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인데 도대체 누가 그를 죽였단 말이오?"


"단원맹!"


"아무래도 처음 들어보는데.... ()을 끊는다()?"


"깊이 생각할 것 없네. 친원(親元) 무림인들을 주살(誅殺)하는 모임이니 글자 그대로 단원맹인 셈이지. 중원의 소림(少林), 전진(全眞), 무당(武當), 정일(正一)같은 커다란 방파들과 광동(廣東)의 진가(陣家), 하남(廣西)의 범가(范家), 사천(四川)의 당가(唐家)같은 내노라하는 명문가들은 물론이고, 강호의 일에는 무관심하던 삼대 마교(魔敎)를 비롯하여 장강의 물도적과 녹림의 산도적, 그리고 지방의 조그만 방파들까지 말그대로 강호 사람들 모두가 이에 호응하여 만들어 졌는데 약 삼백여 명의 뛰어난 고수들로만 이루어졌다고 하네. 지금 중원에서는 바로 이 단원맹도들이, 원나라의 밑에 있었던 우리같은 사람들을 색출해내느라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도 서둘러 이곳으로 되돌아 왔던 거라네."


"으음. 마교까지..."


중인들은 황씨 사내의 말을 들으며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자신들은 살아서는 결코 중원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이 때, 어디선가 흥얼거리는 휘파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발자국소리와 함께 점점 커지더니 곧 문 앞에서 그쳤는데 이어 누군가가 허리를 구부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그 사내의 귀에는 동그란 귀걸이가 덜렁거리고 몸에는 양털로 뒤덮인 가죽 조끼가 걸쳐져 있었는데 얼굴 생김새가 오밀조밀하니 미끈한게 제법 준수해 보였다. 바로 현수법사의 애제자인 무자법인(舞姿法印) 왕조상(王照象)이었다.

 

이 왕조상의 성품은 교활하고 오만한 데가 있어 사람들은 그와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스승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에게 맞서려 하는 이도 드물었다. 왜냐하면 그의 스승은 바로 현수대법사(玄手大法師)라 불리는 몽고제일국사(蒙古第一國師) 파드마-판디타였기 때문이었다. 중국식 이름은 대목은(戴穆殷)이며 주위에서는 간단히 현수법사라 불렀는데 그는 라마교의 전대(前代) 판첸 라마이기도 했다.

 

당시 라마교에서는 암도 굼붐 사원 출신인 총--파의 개혁으로 인해 이전의 지배적이었던 홍모파(紅帽派)가 밀려나고 황모파(黃帽派)가 득세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화신(化身)들이 재생한다는 믿음이었다. 따라서 라마교내의 모든 권력은 두 명의 최고 고승(高僧)인 판첸 라마와 달라이 라마에게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판첸 라마가 불타의 화신이며 달라이 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영적(靈的)인 지위는 당연히 불타의 화신인 판첸 라마가 더 높았으나 외부 일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상례였고, 대신에 실제적인 세속의 권력은 달라이 라마가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라마교 밖에서는 달라이 라마만이 서불(西佛)이란 명호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 판첸 라마는 그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숨은 기인(奇人)들을 일일이 헤아릴 수는 없는 법! 천하를 위진(威震)시키는 쌍불쌍검 못지 않은 고수가 이 황량한 막북에 웅크리고 있으리란 것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묻은 채로 주위를 주욱 둘러보는 왕조상을, 붕산권 황정웅이 황급히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제일국사(第一國師)이신 현수대법사님의 애제자께서 이 누추한 곳엔 어쩐 일이시오? 흐음, 고 며칠 못 본 사이에 기도가 더욱더 헌앙(軒昻)해 지셨구려. 연 방사(方士)께서 그 사이에 새로운 단약(丹藥)이라도 만들어 주셨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하하핫!"


"하하핫! 선비는 삼일동안 보지 못하다가 만나면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더니(士別三日 刮目相看), 그러시는 황형이야말로 오히려 나날이 혈색이 더 좋아지시는 것 같습니다그려. 흐음, 헌데 다른 분들께서는 어째 이 왕모가 별로 달갑지가 않으신가 봅니다안 그렇소, 탁형? "


무자법인 왕조상의 뼈 있는 말에 등에 쌍검을 맨 탁광양이 마지못해 일어서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 무슨 말씀이오? ... 달갑지가 않다니. 오랜만이외다. 왕공자!"


그러자 주변에 앉아있던 다른 사람들도 주섬주섬 일어나며 어색하게나마 한 마디씩 인사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러나 왕조상은 정작 그들의 인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입구가 마주 보이는 상석(上席)으로 가 앉으며


"임 다유사(茶由師)! 어디 오랜만에 임 다유사의 신들린 솜씨나 좀 봅시다. 내게 연고차(硏膏茶) 한 잔만 주구려. 자 그건 그렇고 모두 잠시 좀 앉아 보시오. 내 여러분들께 황제 폐하(소종:昭宗)의 말씀을 전하러 왔소!"


왕조상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디사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께서 아이유시리타라(愛猶識理達臘) 황태자를 따라 이곳으로 온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소이다. 그간 북원(北元)의 기반을 닦느라 여러분들께 소홀히 대한 점, 폐하께서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고 계시오. ,


이제 이곳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고 하니, 다시금 중원 땅을 되찾을 때가 되지 않z`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원을 차지하고 있는 주원장의 저 명()왕조 역시 나름대로 정비를 계속하여 지금은 그 세력이 오히려 이곳에까지 미치고 있음은 여러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두 손으로 받쳐들어 한 모금을 목뒤로 넘기고는


"따라서 정면으로 명과 부딪치기에는 어느모로 보나 현재로선 역부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먼저 중원으로 은밀히 들어가 명의 황실(皇室)과 민심(民心)을 뒤흔들고 중원의 상권(商權)을 오분지 삼 이상 장악해 놓아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안()과 밖()에서 상호(相互) 동시에 들이친다면 주원장(朱元璋)이 아니라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어쩌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론 그 뒤 여러분들께 남는 것은 평생토록 다 누리지 못할 부귀(富貴)와 영화(榮華)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술시(戌時)에 저의 사부님의 처소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 그럼 다들 그때 다시 보도록 합시다."


무자법인 왕조상은 자기 할 말을 다 마치자 한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찻잔을 내려놓고는 뒤도 안돌아보며 쌩하니 천막을 나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쌍검을 맨 탁씨성의 사내가 발치에 놓인 양고기 접시를 발로 걷어차며 험하게 욕을 내뱉었다.


"이 쥐새끼같은 놈! 차호위호(借虎威狐)라더니, 그놈의 대머리 화상만 아니었으면 네 놈의 간은 이 몸이 벌써 회 쳐 먹었을 것이다. 나 쌍수검(雙手劍) 탁광양(卓廣洋), 언젠가는 반드시 네 놈의 심장에 두 개의 바람구멍을 내주고 말테다."


안그래도 거무스름한 탁광양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거의 흙빛이 되다시피 했고 다른 자들 역시 건방진 왕조상의 행동에 분을 삭이느라 애쓰고 있는 듯 했다. 그 와중에도 다유사 임전방은 아무말 없이 불길 속으로 마른 말똥을 계속해서 집어넣고 있었다. 오직 불길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      *      *

 

 

재질이나 외관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그 크기는 일반 겔의 거의 세배는 족히 될 듯 보였다. 이 몽고족들의 겔을 한족(漢族)들은 '빠오'라 불렀는데 원래 빠오란 만주족(滿洲族)의 말로서 집 또는 방이란 뜻이다.

 

빠오는 유목민들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기에 아주 편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들이 빠오를 뜯어 말이나 낙타의 등에 싣고 다른 곳에 옮겨 다시 짓는 데는 반 시진이면 충분할 정도로 무척이나 간편했다. 그러나 지금 이 눈앞의 빠오는 그 덩치만큼이나 짓는 데에도 몇 곱절의 시간이 들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을 정도로 컸다.

 

약 반 시진 전부터 이 거대한 천막 안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이 양가죽이나 두꺼운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간혹 몽고족 특유의 변발을 한 이들도 눈에 뜨이기는 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한족(漢族)이라는 것은 그들의 말투나 생김새를 봐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가 과거에 원나라 관부(官府)와 군단(軍團)에 투신(投身)했거나 도움을 주었던 무림인들로 동족인 한인(漢人), 특히 남인(南人)들에게 많은 원망을 샀었기에 명나라의 건국과 함께 원의 잔여세력을 따라 중원을 떠나온 것이었다.

 

당시 쫓기듯이 몽고족을 따라 그들의 고도(古都) 하라코룸으로 들어온 자들은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로서 이들 한인과 함께 색목인(色目人) 그리고 라마승들이었다.

 

이들 중 색목인은 원 태조(太祖) 테무친(鐵木眞)의 서정(西征)을 전후해서 복속(服屬)된 돌궐족(突厥族)과 돌궐화된 이란인(伊蘭人)들로 북부 건조지대의 사막유목 문화(沙漠遊牧文化)를 지니고 있어 몽고인들과 풍속이나 생활 등의 전통이 상당히 비슷했다.

 

따라서 한인에 비해 절대적으로 인구가 적었던 원나라에서는 외올문자(畏兀文字)를 관용(官用)문자로 차용(借用)하게 됨을 계기로, 색목인들을 정치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 중용(重用)하게 된다. 하지만 원의 멸망과 동시에 그들 거의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제는 황제의 측근들이었던 몇 사람만이 북원(北元)의 소종(昭宗) 황제(皇帝)를 도와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한편 라마승들 역시 상당수가 이미 토번(吐蕃:西藏)의 성스러운 도시 라사로 떠나버렸고 한때 판첸 라마로 숭앙(崇仰)받던 현수법사(玄手法師)의 추종자들만이 그를 따라 이곳에 남아 있는 형편이었다.

 

이제 천막 안에는 단 두 사람만이 커다란 암홍자색 자단목(紫檀木)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무언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 젊은 사람은 화려한 옷차림의 왕조상이었다. 그리고 왕조상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사십대의 중늙은이였는데 머리가 반들거리고 몸에 붉은 가사(袈裟)를 휘감은 것으로 보아 승려인 듯 보였다.

 

눈알이 부리부리하고 코는 주먹만한게 수염만 갖다 붙이면 영락없이 산도적인 이 중이 바로 현수대법사(玄手大法師)라 불리는 몽고제일국사(蒙古第一國師) 대목은(戴穆殷)이다. 비록 그의 언행이 경박하다고는 하더라도, 그의 무공은 천하에 적수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고심막측하고, 그의 심기 또한 무저갱과 같아 매사에 소홀한 법이 없었기에 진중의 사람치고 그를 꺼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뭐라고?"


들릴듯 말듯 소근거리던 현수법사가 갑자기 고함을 내지르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단단하기로 소문난 자단목탁자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쪼개지며 무너져 내렸다.


"그 말이 사실이냐? 이런 때려죽일 놈 같으니라고...."


"... 사부님! 제자가 이미 그 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했습니다. ... 고정을..."


바닥에 널브러진 탁자를 계속해서 발로 내리밟던 현수법사는 한참 후에야 분이 풀렸는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사람 서넛이 들어오더니 능숙한 솜씨로 부서진 탁자를 깨끗이 치워내고는 새로운 탁자를 가져다 놓았다가만히 눈치 보던 왕조상이 다시금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 사부님, 그 도장()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이미 사부님의 무공은 천하에 적수를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인데 그까짓 도장나부랭이가 무슨 도움이 되는지 제자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저를 좀 깨우쳐 주십시오."


현수법사는 새로 들여놓은 탁자를 뚫어질 듯이 노려보더니 문득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시수지과여(是誰之過與). 결국은 내가 부덕한 탓이거늘...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 제가 진작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사내구실도 못하는 놈한테 이런 희롱을 당하리라고는..."


"아니다, 아니야! 결코 그렇지가 않다. 은밀하게 처리할 일은 나 자신도 모르게 행하라 했다. 어쨌든 우리는 수석태감(首席太監)에게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으니... 그나저나 진관(陳寬)이 죽어버렸으니 앞으로 꽤나 시끄러워지겠군"


"사부님,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십여 년이나 들인 공이 허사가 되버렸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할 수 없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어쨌든 네가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대신 이제라도 도장의 내력을 너에게 들려주마."


"제자, 세이경청(洗耳傾聽)하겠습니다."


"흐음, 어쨌든 너도 알다시피 나는 라마교의 판첸 라마였다. 세인들은 오직 달라이 라마만을 서불(西佛)이라 칭송하며 우러르고 있으나 기실 그는 나의 사제이다. 나는 무공, 심기 등 모든 면에서 언제나 그 멍청한 놈의 사제를 능가했으나 그... 그 망할 놈의 사부는, 나의 야심이 크다느니 품성이 잔인하다느니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라마교의 호신공(護神功)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 그래봤자 어쨌든 결국 난 혼자 익히고 말았지. 그 망할 놈의 사부는 그 멍청한 사제녀석만 편애(偏愛)를 했단 말이야. !


어쨌든 그 망할 놈의 사부도 나중에는 결국 늙어 죽어버렸지.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남몰래 금지(禁地)를 드나들기 시작했던 거야. 그곳은 수백 개의 동굴이 있는 곳인데 그 중에 몇몇 굴 안에 라마교의 호신공이 벽화(壁畵)로 전해 내려오고 있지.


흐느적거리는 것이 무공은커녕 계집들 뱃놀이하는 것 같다고 네 녀석이 투덜거리던 무공이 바로 여기서 익힌 무공이다. 멍청한 네 놈은 모르고 있지만 무자무(舞姿武) 십이악무(十二樂舞)는 정말 무서운 무공이다. 그 대단하다는 중원의 소림(少林)무공도 이에 비하면 제법 손색이 있을게야


어쨌든 오 년간에 걸쳐 무자무 십이악무를 모조리 익히기는 했는데 지랄하고..... 그 죽지 못해 안달이 난 호교원(護敎院) 노인네들이 눈치를 채고 들고일어난 거야. 정말 그때는 꼼짝없이 나도 지해(肢解:팔다리를 잡아매고 찢어내는 형벌)를 당하는 줄만 알았지. ! !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하지만 그 멍청한 사제 놈이 선심쓰듯 나를 살려주더군. 처음 사제녀석과 손을 나눌 때 그 녀석은 비루먹은 망아지마냥 비실비실 힘도 제대로 쓰지 못했는데, 그놈의 빌어먹을 무자무만 시전하면 쥐새끼가 고양이한테 내몰리듯 되려 내가 궁지에 내몰리는거야. 어쨌든 그놈은 내게 틈을 주고 나는 살아서 달아났다. 그놈은 도망치는 내 뒤꼭지에 대고 말하기를, 무자무 동작을 모두 익혔다 하더라도 그 네 가지 수법(手法)을 모르면 결코 사용할 수 없다나? ... 게다가 기혈의 경로도 모르니 네놈 말마따나 흐느적거리는 춤일 뿐이라고... ! 하지만 난 이미 그까짓 응용법쯤은 다 훔쳐 배운 상태였다구.


어쨌든 네 녀석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시피 이 현수대법사 대목은은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절세기재란 말이다. ! ! 그 말은 네 놈이 나를 따라오려면 하루 열두 시진을 꼬박 무공만 연마해도 모자란단 얘기지. ! !"


"그럼 왜 사부님께서도 같이 무자무를 펼치지 않으신거죠? 그랬다면 그 멍청... 아니 사부님의 사제... 아니 사숙(師叔)님도 사부님의 손아래에서 꼼짝하지 못했을게 아닙니까?"


"흐흐, 이 멍청한 제자 놈아. 방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기혈의 경로를 모르면 내력이 이어지지 않아 손발만 허우적대는 꼴이라구. ! !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어쨌든 이 사부는 라마교가 배출해 낸 최고의 기재임에는 틀림 없었다. 왜냐하면... ! ! 바로 그 망할 놈의 사부가 안 알려준 기혈의 경로를 나 스스로가 찾아냈기 때문이다. 지랄하고... 그 덕분에 무려 십 년을 까먹었지만 말이다. 치사한 자들 같으니라고. ! ! 옴 마니 반메 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난제(難題)가 생겼다. 네 놈도 알다시피 사람 몸에는 수백 개의 혈도가 어우러져 있으니, 그 수백 가지를 짜맞추어 어느 한 경로를 찾아낸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한 개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 그러나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난 그것을 해냈다


하지만... 하지만 지랄하고... 후레자식도 자기 밥그릇은 있듯이 무자무에게도 따로 맞는 밥그릇이 있는 법이니, 천하기재인 내가 비록 시전 가능한 경로를 어쩌다 하나 찾았다손 치더라도 본래의 제 짝은 아닌 것이야. 결국 원래 구결보다 내력이 배로 소모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더란 말이다. 그래서 바보같은 네놈에게는 지금껏 무자무의 구결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내력이 두 배나 소모된다면 사부님 내력이 그 멍청... 아니, 그 사숙님보다 두 배 이상이 되어야 사숙님을 물리칠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우하하핫! 천하기재인 이 사부의 제자답게 예리한 지적이구나. ! !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굳이 따지자면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 멍청한 사숙... 아니, 사제 놈도 명색이 무림고수로 손꼽히는 만큼 그 녀석보다 두 배 이상의 내력을 가진다는 말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씀은... 혹시 채음보양술(採陰補陽術)?"


"쯧쯧, 이런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기껏 생각한다는게 계집 사타구니서 노닥거리는 거라니. 자고로 피색여피수(避色如避讐)라 했거늘... ! ! 옴 마니 반메 훔


어쨌든 방문좌도(傍門左道)의 술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탁기(濁氣)가 심해 오히려 몸을 망치게 되지. 흡인기공(吸引氣功)을 지니고 있는 마교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주 외에 쓸만한 놈이 몇이나 되더냐?"


"그럼 흡월정법(吸月精法)이나 수목채기법(樹木採氣法)은 어떻습니까?"


"그러한 자연의 기를 얻는 것이 뒤탈은 없을게다. 다만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고 특히 흡월정법 같은 것은 이룬 것을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니 역시 너나 나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혹시 진관에게 받아내려 하셨던 도장에 그런 묘법(妙法)이 적혀있었던 겁니까?"


"쉬잇! 이 멍청한 놈아, 소리를 낮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그리 많지가 않다. 만에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챈다면 강호에 한 차례 커다란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고 설사 우리가 그것을 손에 넣는다손 치더라도 강호의 표적이 되어 죽어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자고로 이러한 흡기공(吸氣功)은 누구나 익히고 싶어하면서도 또한 누구나 꺼리는 무공이다. 생각해 봐라. 네 녀석이 평생 쌓은 내력을 어떤 놈이 한순간에 앗아가 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그래서 예로부터 이러한 무공이 출현하게 되면 언제나 한 차례 커다란 피바람이 불어닥치곤 했다. 불과 십여 년 전에도 식기대법(食氣大法)이라는 사공(邪功)때문에 근 백여 명이 넘게 죽어나간 일이 있었지


그러니 너도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특히 곰처럼 보이지만 여우보다 교활한 황가놈이나 연신 죽는소리나 지껄이는 소씨 늙은이는 오래 전부터 은밀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 정말 우스운 일이지감히 제 분수도 모르고, ! !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놈은 항상 천근(千斤)같이 생각하고 만근(萬斤)같이 행동해야 한다. 내가 원을 떠난 사이에 그놈들이 감히 딴 생각을 못 품도록 말이다."


"? 이곳을 떠나신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쯧쯧, 이 멍청한 것아! 흡원기보(吸元氣寶)는 끝까지 찾아야 할 것 아니냐? 그 빌어먹을 태감이 황금에 눈이 뒤집혀 너를 기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뱉은 말은 믿을만하다. 사실 칠십 년 전 이미 그 기보(奇寶)는 대도(大都:北京) 황성(皇城)안에 있었으니, 이곳으로 옮겨오지 못했다면 결국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아니면 명()의 신도(新都)인 응천부(應天府)로 옮겨졌다는 말이 된다. ! !


네 녀석도 이미 짐작했겠지만 흡원기보는 내가 찾는 도장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에 그 망할 사부의 사부 그러니까 나의 사조(師祖)가 되는 사람이 성종(成宗)의 부름을 받고 황실서고(皇室書庫)에서 몇 년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사조가 교단으로 돌아와 사부에게 한 말이 있었다. 바로 흡원기보에 관한 말이었지


그 말에 따르면 원래 흡원기보에 앞서 흡원기록(吸元氣錄)이란 책이 있었다고 한다. 남조(南朝) 제량(齊梁) 때 도사이던 도홍경(陶弘景)이 지은 책인데, 그는 도기(導氣)를 통해 몸을 건강히 하고 장수하려는 생각에 양생연명록(養生延命錄)이란 책을 지은 자다. 그런데 양생연명록을 쓰는 과정에서 우연히 주위 온갖 사물의 기운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게 되고, 이를 또 다른 책에 옮겨 적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흡원기록이다. 이 책의 효능은 말 그대로 무한한 내력을 지닐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정말 엄청난 보물인 셈이지. ! !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어쨌든 도홍경은 말년에 이 기서(奇書)를 완성하고 보니 감히 자신은 감당하지도 못할 내용인게야. 그래서 당대 명장(名匠)이던 당호대(唐昊臺)에게 부탁해서 두 벌의 사상인(四象印)을 만들도록 하고 흡원기록은 파기(破棄)해 버린 것이지. 나의 사조가 황실의 어느 낡은 책에서 본 내용이 여기까지다. , 이 녀석아! 이것을 잘 보거라."


현수법사는 말을 마치자 의기양양하게 법의(法衣)자락을 풀어헤치고는 허리춤에 매달린 노란색 주머니를 끌렀다. 주머니가 처친 품새로 봐서는 제법 묵직한 물건이었는데 주둥이를 동여맨 끈을 풀자 새까맣게 반들거리는 네 개의 도장이 드러났다. 크기는 한 주먹이나 될까말까 했는데 손으로 쥐는 부분에는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길수(吉獸)가 도장마다 각각 한 마리씩 양각(陽刻)되어 있었고, 도장바닥에는 이상한 무늬가 음각(陰刻)되어 있었다.

 

왕조상은 그중에 포효하는 호랑이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집어들고는 바닥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도대체 무슨 내용이 새겨진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부님, 도대체 여기에 뭐라고 새겨진 겁니까?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데요. 어찌보면 그림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글자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놈아! 천하기재인 나도 오 년이 넘도록 풀지 못한 비밀을 네깟놈이 어찌 한눈에 알 수가 있겠느냐! 이는 아마도 또 다른 한 벌의 사상인과 함께 고심해야 비밀이 풀리지 않을까 싶다. ! !"


왕조상은 어느새 사상인을 주머니에 쓸어담아 허리춤에 매고있는 현수법사를 향해 다시금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사부님께서는 한 벌만 가지고 계시는거죠? 혹시 사상인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겁니까?"


"네놈은 이 사상인을 만든 당대호란 인물의 후손들이 누군지 아느냐? ! ! 바로 사천 당가놈들이다. 혹시나 했는데 이 한 벌의 사상인을 그놈들은 집안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더란 말이다. , 돼지목에 금줄을 걸어준 셈이지. 눈앞에 있는 보물도 못 알아보는 멍청한 놈들같으니라고... ! !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어쨌든 푸른 빛이 난다는 다른 한 벌의 사상인은 나의 사조가 이미 칠십 년 전에 황실에서 보았다고 했다. 나는 원이 막북으로 쫓겨오면서 가져온 보물들 틈에 그 사상인이 끼어있는지 의심스러워서 진관을 매수했던 것인데, 그놈이 재물에 눈이 어두워 지금껏 너를 속여왔을 줄이야..."


"그럼 사부님께서는 이제 대도로 가시는 겁니까? 아니면 명의 수도인 응천부(應天府)로 가시는 겁니까?"


"흐음, 대사를 치르려면 재물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법. 그러나 제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십 리 밖에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대도의 남겨진 금은보화는 응당 응천부로 옮겨갔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먼저 그곳으로 가봐야겠다. ! !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또 다시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멍청한 사제 놈과 호교원의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황모파(黃帽派) 늙은이들을 쓸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네 녀석은 내가 나머지 한 벌의 사상인을 손에 넣을 때까지 이곳에 남아있거라. 저 오만하고 건방진 한족(漢族)놈들은 우리 같은 변방의 이족(異族)들이 중원 땅에 뿌리를 내리도록 놓아둘 만큼 관대하지가 않아. 그렇다고 네 녀석이 평생을 교()에 목을 맬 놈도 아니고 하니 결국 지금 이곳이 네놈한텐 가장 적합한 곳인 게야.


어쨌든 아까 네놈들이 중원의 단원맹에 대항한답시고 복원회(復元會)인지 뭔지를 급조하긴 했다만, 그런 식으로 서둘렀다가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섣불리 충돌했다가는 이곳마저 위험해진다. 그러므로 최대한 은밀히 처신을 해야한다. 이제는 원이 명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명이 원을 노리는 형국이다. 강하게 맞서기보다는 땅속으로 물 스며들 듯 그놈들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황가나 소가 놈은 필히 조심하거라. 그 몇 놈만 주의를 한다면 이곳에서 너를 곤궁에 빠뜨릴 만한 놈은 거의 없을 것이다. ! !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현수법사가 말을 마치자 왕조상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스승을 향해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현수법사는 왕조상의 절을 받는 건지 마는 건지 눈을 감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커다란 천막 안에는 한동안 왕조상의 울먹이는 소리만이 메아리쳐 웅웅거릴 뿐이었다

 

달이 구름에 가려 앙상한 나뭇가지에 희뿌연 빛을 뿌리고 있다. 어느덧 축시(丑時)가 가까워졌다. 점점 저들 사제간에도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만유무상(萬有無常) 회자정리(會者定離),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 아닌가!

 

 

 

 

 

 

... 老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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